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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글 조원태목사의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 잉태, 눈물에서 태어난 왕국 (뉴스앤조이) 3-13-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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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media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5회   작성일Date 26-03-14 13:52

    본문

    잉태, 눈물에서 태어난 왕국

    •  

    조원태목사의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

    사무엘상 1:1–2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더라.”

    사무엘상 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실로의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갑다. 성막 제단에서는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로 오른다. 돌바닥에는 밤의 냉기가 남아 있고, 뜰에는 아직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지 않다.

    그 한쪽에 한 여인이 서 있다. 입술은 떨리고 눈물은 계속 흐른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그녀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쏟아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그저 상심한 여인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그 새벽, 한 여인의 눈물 속에서 한 시대의 이야기가 움트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사사 시대는 저물어 가고 왕정의 시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공동체의 질서는 흔들리고, 권력의 구조는 재편되며, 역사의 흐름은 다른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사울과 다윗 같은 왕들이 등장하고 전쟁과 정치의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채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그 거대한 변화를 왕의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선을 낮추어 성막의 뜰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흐느끼며 기도하는 한 사람을 보여 준다.

    이 오래된 성경 기록은 언제나 예상 밖의 시선을 택한다. 인간의 역사책은 대개 왕과 전쟁, 정치의 전략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서사는 역사의 출발점을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다. 겉으로는 미미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자리, 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이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묻는다. 역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역사는 사람들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의 시간, 하나님께 올려지는 한 사람의 기도의 자리에서 새로운 시대의 씨앗이 심어진다.

     

    눈물의 문턱

    사무엘상의 첫 장면은 결핍으로 시작된다. 한 여인이 있다. 이름은 한나.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이가 없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이 없는 여인의 삶은 개인적 슬픔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것은 날마다 가슴 깊숙이 내려앉는 보이지 않는 상처와 같았다.

    그녀의 곁에는 브닌나가 있다. 브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한나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 스치는 웃음 하나가 칼날처럼 한나의 마음을 스친다. 같은 집에 살지만 두 여인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한쪽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넘치고, 다른 한쪽에는 밤마다 삼켜야 하는 울음이 쌓여 간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한다. 제사를 드리러 올라갈 때마다 그는 한나에게 두 몫을 건넨다. 그러나 사랑이 언제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아니다. 엘가나는 위로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한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남아 있다. 겉으로 보면 한 가정의 이야기다. 한 여인의 슬픔이다. 그러나 그 개인의 이야기 속에는 이미 한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사사기의 마지막 장면은 한 문장으로 멈춘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지도력은 사라지고 질서는 흩어졌다. 길을 잃은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생각을 나침반 삼아 길을 걸었다.

    사무엘상은 바로 그 거대한 역사적 공백 위에서 시작된다. 놀랍게도 성경은 이 시대의 혼란을 전쟁이나 정치의 이야기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가정의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아이 없는 집,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정, 희망이 쉽게 말해지지 않는 삶. 그래서 한나의 눈물은 단지 한 여인의 슬픔이 아니라 한 시대의 울음이 된다. 한 여인의 마음 속에서 한 시대가 함께 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상의 문은 나라의 붕괴로 열리지 않는다. 전쟁의 이야기로도 시작되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한 여인의 마음 속으로 데려간다. 시대의 무게를 품고 울고 있는 한 사람의 자리로. 하나님은 때때로 한 시대의 질문을 단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압축해 두신다.

     

    기도가 역사를 돌린다

    그러나 한나는 절망 속에서 한 가지 선택을 한다. 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대신 그 울음을 하나님께로 가져간다.

    실로의 성막에는 아직 아침빛이 완전히 퍼지지 않았다. 제단 위로 희미한 연기가 가늘게 올라가고, 뜰은 한산했다. 그 고요한 공간 한가운데서 한 여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무너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기 시작한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입술은 움직이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눈물은 끊임없이 떨어지고 말은 자주 끊긴다. 그것은 하나님께 쏟아 올려진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사무엘상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순간 실로의 뜰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제사장 엘리는 그 장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한 여인의 감정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시대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미래가 군대에서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도 시작되지 않는다. 권력에서도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도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자리, 하나님께 향한 한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기도는 현실을 다시 여는 행동이다. 인간의 힘이 멈춘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시기 때문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역사

    한나의 기도는 한 여인의 삶 전체를 하나님 앞에 내어 거는 결단이었다. 그녀는 하나님께 이렇게 서원한다. 만일 아들을 주신다면, 그 아이를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겠다고.

    이 기도는 매우 낯설다. 사람은 보통 얻기 위해 기도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기도한다. 상처를 메우기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한나는 얻기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품기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보내기를 약속한다. 그녀의 기도는 소유의 기도가 아니라 헌신의 기도였다.

    바로 그 순간,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한 인물의 역사가 잉태되고 있었다. 그 이름이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왕이 아니다. 왕관을 쓰지 않는다. 군대를 이끌지 않는다. 전쟁으로 이름을 남긴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왕들을 세우는 사람이다. 훗날 그는 사울의 머리 위에 기름을 붓고, 또 한 번 어린 목동 다윗의 머리 위에도 기름을 붓는다. 이스라엘 왕정의 역사는 바로 그 두 번의 기름 부음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거대한 역사의 출발점은 정치가 아니었다. 권력도 아니었다. 궁전도 아니었다. 


    그 시작은 기도였다.

    실로 성막의 뜰, 눈물에 젖은 한 여인의 기도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씨앗이 심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무엘상의 이야기는 왕들의 이야기이기 전에 먼저 기도의 이야기다. 권력의 서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이미 전혀 다른 자리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이 작은 시작은 곧 사무엘상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한나의 기도로 태어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가 되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는 예언자가 된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 속에서 언약궤가 빼앗기는 비극을 목격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회개의 외침을 전한다. 그리고 백성들이 왕을 요구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욕망 사이에서 깊은 긴장을 겪는다.

    그의 손을 통해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고, 또 그의 손을 통해 어린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는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단순히 한 왕의 연대기가 아니라 왕을 세우시는 하나님과 왕을 요구하는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는 신학적 드라마가 된다. 권력은 세워지지만 동시에 시험받고, 왕은 등장하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평가된다. 한나의 눈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울의 비극과 다윗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하나님 나라와 인간 권력 사이의 긴장을 끝까지 드러낸다.

    사람들의 눈에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막의 한쪽에서 한 여인이 울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역사를 움직이고 계셨다. 왕들은 훗날 무대 위에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의 시작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여인의 떨리는 입술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그래서 묻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역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사람들은 왕의 이름을 기억하고, 군대의 움직임을 지도 위에 그리며, 권력의 결정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무엘상의 첫 장면은 금관이 빛나는 궁전이 아니라 아직 새벽 공기가 남아 있는 실로의 성막 뜰이다. 그리고 첫 주인공 역시 왕이 아니라 기도하는 한 여자다. 눈물을 삼키며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이는 한 여인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아직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리.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계실지 모른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문지방이 있다. 늦은 밤 아무도 모르게 드리는 기도의 자리, 가슴 깊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의 자리. 세상은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신다.

    이 질문은 개인의 삶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로도 이어진다. 냉전의 마지막 그림자를 안고 있는 한반도,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휴전이라는 긴 밤 위에 서 있는 이 땅 또한 역사의 문지방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세계 곳곳에서는 다시 전쟁의 불길이 번지고 있다. 중동의 긴장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가장 어두운 순간에 방향을 바꾸어 왔다. 위기는 끝이 아니라 전환의 문턱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시대는 궁전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실로 성막 한쪽에서 흘러내리던 한 여인의 눈물 속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너지는 한 사람의 기도에서.

    어쩌면 역사는 바로 그런 기도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 최근 구약학 연구에서는 사무엘서를 단순한 왕정 연대기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신학적 성찰로 읽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사무엘서를 "왕권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권력의 유혹과 위험을 드러내는 신학적 드라마"로 설명한다. 또한 로버트 알터는 사무엘서 이야기의 문이 한나의 기도로 열리는 사실 자체가 이 책 전체의 신학적 방향을 결정한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사무엘서 연구자 데이비드 토시우 역시 한나의 기도와 노래를 사무엘서 전체를 여는 신학적 서곡으로 이해한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신학적 통찰의 출발점은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인의 눈물이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신학적 통찰의 출발점은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인의 눈물이다. 사무엘서의 문은 왕궁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서 열린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한나의 기도와 노래를 사무엘서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로 읽는다. 하나님은 강한 자의 권력보다 낮은 자의 부르짖음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신다는 사실이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권력의 기록이기 이전에 기도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오래된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삶의 역사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가.

    조원태 목사 / <뉴욕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