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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글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 (뉴스앤조이) 2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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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media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1회   작성일Date 26-01-15 10:01

    본문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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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태 목사의 연재『요나서로 묻는 17개 질문』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바 있습니다. 독자층에 깊은 질문을 던지며 신학적·목회적 통찰을 나누어 온 그의 글은 특히 삶의 언어로 성서를 풀어낸 점에서 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성서 66권 각 책의 서문(Threshold, 문지방 텍스트)을 따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연재『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로 다시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라는 주제로 출발합니다. 특정 책의 프롤로그 분석을 넘어, 성경 전체의 첫 문장을 따라 걸어가는 실험적 글쓰기로서 목회와 문학, 신학을 잇는 연재가 될 것입니다.

    연재의 서막을 여는 글은 프롤로그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며, 이후 매주 성경의 서로 다른 현관을 열어갈 예정입니다.

    이 연재가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고 성서를 다시 ‘시작의 자리’에서 읽게 하는 영적 초대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성경의 전체적인 가르침이 다시금 생생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프롤로그] 문지방에서 시작되는 큰 이야기

    책은 언제나 문 하나를 달고 시작한다. 독자는 그 문턱을 넘기기 전까지, 저자가 준비해 둔 세계의 공기를 알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첫 문장은 독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작가는 그 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작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볍지 않다. 문지방은 낮지만,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다.

    성서 66권의 각 책에도 그런 문지방이 있다. 

    그 문지방은 우리를 다음 방으로 인도하는 통로이자, 전체 이야기를 미리 보여주는 창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가 많지만, 저자들은 이유 없이 처음을 쓰지 않았다. 시작은 언제나 방향을 제시하고, 처음의 한 줄에는 종종 마지막의 운명이 담겨 있다.

    나는 꼬박 4년 동안(2014–2018) 매주 성서의 서문을 설교했다. 서문은 성서의 세계가 어떻게 열리고, 왜 그 세계가 시작되는지를 말해주는 열쇠였다. 서문을 붙들면 어느새 그 책 전체가 함께 열린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창세기 첫 단어 “태초에”는 하나님이 만물의 문을 여는 방식을 말해준다. 출애굽기의 문지방은 억눌린 자들의 신음과 눈물로 젖어 있다. 레위기는 조용한 부르심으로 시작하고, 민수기는 먼지 나는 광야에서 움직이는 진영의 소리로 시작한다. 신명기는 요단 동편에서 들려오는 한 늙은 지도자의 마지막 목소리로 시작된다.

    이렇게 각 책의 서문은 서로 다른 계절, 서로 다른 기온을 품은 여러 개의 현관이었다.

    흥미롭게도 ‘문지방(threshold)’이라는 은유는 현대 성서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이 용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독자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직전 머무는 해석학적 공간을 가리키는 전문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예일 학파의 데이비드 클라인스(David Clines)는 성경의 첫 단락을 ‘문지방 텍스트(threshold text)’라 명명하며, 그 문지방이 독자의 시야를 재구성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성경의 서두는 이야기의 토대가 아니라, 독자가 서 있게 될 세계 전체의 조망대”라고 말하며, 서두 한 줄이 세계를 여는 영적 창문임을 강조하였다.

    문지방 은유는 구약학의 다른 분야에서도 확장되었다. 미어 스턴버그(Meir Sternberg)는 『The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에서 서문을 ‘지각의 재배열(perceptual reorientation)’이 일어나는 지점이라고 설명했고, 아델 베를린(Adele Berlin)은 성서 서두의 문체가 “독자를 특정한 세계관 안으로 밀어 넣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명확히 말했다. 로버트 알터(Robert Alter)는 성서의 첫 문장을 “문학적 과업 전체의 음색을 결정하는 프롤로그적 톤”이라 부르며, 서두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전체 책의 미학적·신학적 기조를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발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 역시 성서의 시작 구절을 “세계-형성적 언어(world-forming speech)”라 명명하였다. 그는 이 표현을 세계를 형성하는 서설로 이해했다. 서두의 한 문장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말해짐으로써 세계를 만들어 내는 언어이며, 독자는 그 서설이 선포되는 문지방에서 새로운 현실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의 시작 구절은 이후의 모든 신학과 삶의 방향을 형성하는 결정적 자리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서문들 앞에 한 권씩 꾸준히 서는 이 글쓰기의 시도는 성서 해석의 역사에서도 드문 길이었다. 성서 66권 전체의 서문만을 따라 정경을 관통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전례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연구는 특정 책의 프롤로그를 분석하거나, 성경 전체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교부 오리겐(Origen)과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가 몇몇 책의 서두를 깊이 주해한 적은 있었지만, 성서 66권의 ‘문지방’만을 관통해 전체를 읽어내려는 일관된 시도는 거의 없었다. 근대에는 차일즈(Brevard Childs)의 정경비평이나 알터(Robert Alter)의 문학적 성서읽기가 서문의 중요성을 새롭게 비췄지만, 여전히 연구 차원이었다. 서문을 독립된 영적 현관으로 삼아 설교하고, 그 문턱에서 오늘의 독자를 다시 세우려는 목회적·문학적 시도는 전례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이 서문 시리즈는 단지 설교의 집합이 아니라, 성서를 ‘시작의 신학’으로 다시 읽어 내려는 독창적이고 역사적으로 드문 실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은 복잡한 문제 속에서 길을 잃는다. 때로는 너무도 깊이 들어가서, 어디가 출구인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문지방 아래에는 하나의 진리가 흐른다. 

    하나님은 언제나 ‘처음’에서 우리를 맞으신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처음의 자리를 하나님은 다시 ‘시작’이라고 부르신다. 그분은 폐허 위에서도 처음을 창조하신다.

    시작으로 돌아오면, 다시 길이 보인다. 처음을 붙들면, 전체가 열린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가 ‘서문’ 앞에 다시 서는 그 순간을 기다리셨는지도 모른다. 성서의 서문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취향이나 문학적 습관을 살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여시는지를 배우는 일이다.

    서문은 때로는 낮은 속삭임이고, 때로는 다가오는 폭풍의 첫 바람이며, 때로는 오래된 갈망을 깨우는 작은 기도다. 그러나 언제나 한 가지를 가리킨다. “이제 문은 열려 있다. 서문의 세계로 들어와 보라.”

    이 연재는 문지방에 서서 귀를 기울이는 일,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숨결을 듣는 시도다. 서문은 작다. 그러나 작은 문지방을 딛는 순간, 우리는 성서 전체가 우리를 향해 열리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문지방 위에 발을 올려놓아 보자. 하나님께서 처음의 자리에서 어떻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지, 서문은 놀랍도록 분명한 목소리로 말해 줄 것이다.

    조원태 목사 / <뉴욕우리교회>